대학생때부터 자취를 해왔다.

기숙사는 아니고 그냥 학교 근방에 고시원에서 월 25~30만원 정도 내면서 살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대략 왕복 2시간 30분정도였는데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그때는 돈보다 시간을 소중이 생각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더 소중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로또는 매주 사고 있음)

 

새로 들어간 회사도 집에서 왕복 2시간 이상 걸렸는데,

학교와 다르게 출퇴근 시간대의 지옥철을 타야 했다.

 

지옥철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 인성의 끝을 맛보았다.

- '갈지'자로 와리가리 걸어가면서 길막하는 사람들

- 지하철 이미 오고있는데 느릿느릿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내 앞 사람

- 줄 서 있는데 느즈막히와서 가장 앞사람 옆에 서서 새치기하는 사람들

- 집에 가고싶은데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타질 못하는 퇴근시간 지하철(못타고 세 번을 보냈던 적도 있음)

.......대놓고 말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회사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 내의 고시원을 알아보았는데

강남권이라서 그런지 고시원이 무지하게 비쌌다.

월 50하는 고시원도 봄(고시원 맞나??)

 

그래도 시간 아껴서 공부도 더 하고 프로젝트도 집중할 수 있을꺼라는 생각에 발품을 막 팔고 다녔더랬다.

친구들한테 고시원 들어간다고 말하니 녀석들이

"차라리 관악구쪽에 전셋집을 알아봐라 돈이 너무 아깝다" 라며 필사적으로 말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려준 친구들이 고마움 ㅎㅎ

 

신림~서울대입구역 부근을 알아보니 교통편도 괜찮고

2호선으로 연결되어있어 회사랑 그렇게 멀지도 않고

게다가 집값이 싸다!

물론 싼 집들은 대다수가 옥탑이거나 반지하거나 역과 엄청 떨어진 곳이었지만,

간혹 역세권인데 지상층인 원룸들도 보였다.

대체적으로 부동산 앱보다 허위매물 없이 클린하다는 네이버 부동산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원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 전세 5,000만원 이하 : 80% 대출금이 나오는 청년 전용 버팀목 대출을 받을 예정이라, 남은 20%를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5,000만원이었다.
  • 공과금은 10만원 이하
  • 역세권 : 2호선에서 10분 거리 이내
  • 5평 이상 : 책상을 놓고 공부하려면, 바닥에서 자도 좋으니 5평 이상이어야 했다.
  • 기타 : 풀옵션, 남향 등

이 많은 원룸 중에 내게 딱 맞는 원룸이 있겠지...

 

나는 조건에 맞고 살기 괜찮은 집을 찾으면 해당 매물을 올려둔 부동산에 연락하여 실제 원룸을 보러 갔다.

부동산에 내가 이런 조건의 집을 찾고 있다고 말해주면 

꾸준히 "5,000 만원에 5평 이상 좋은 집 구하기 힘들어요. 우리 부동산이 매물도 많고 지금 보여주는 집도 진짜 어렵게 구한거에요" 라고 말하더라. 심지어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이 집 진짜 괜찮은 조건이라고 계속 말함.

부동산 업자는 매물을 팔아야 돈이 되기때문에 착하고 싹싹한 태도를 유지한다. 물론 그런 태도는 좋지만,

그렇다고 그런 모습에 홀라당 마음이 빼앗겨서 안 좋은 집을 덜컥 계약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부동산에 연락하면서 얻은 팁은 다음과 같다.

최대한 최근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연락하는 것.

2개월 전에 올라온 매물은 이미 팔렸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매일 네이버 부동산을 체크하여 괜찮은 집이 올라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동산 업자들이 네이버에 매물 정보 업로드를 요청하면 네이버 직원들이 확인한 후 업로드하고

사용자인 우리가 볼 수 있단다. 네이버 직원들이 일하는 9시~18시 사이에 매물들이 올라온다는 뜻.

 

아침에 꽤 괜찮은 매물을 찾아서 연락을 드리고 퇴근 후 집을 보러간다고 예약을 걸어두었다.

근데 오후 1시즘에 갑자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죄송하지만 다른 분이 먼저 보고가셨고 계약금도 선입금 하셨다고 하더라.

전세 보증금도 적고 실평수도 넓어서 혼자 살기 진짜 괜찮은 집이었는데....

 

예약은 내가 먼저 했는데 ㅠㅠ 케장콘 실화냐

 

그 후로도 여러 집을 둘러보다가 간당간당하게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았다.

전세 5000짜리에 5평이고 역세권에 공과금 8만원(전기 인터넷 수도 포함)

북향이고 창문 바로 앞에 건물이 있어 잘만하면 손에 닿을수 도 있을 것 같았다.

 

전세 5000짜리가 흔한 매물이 아니기때문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가계약서를 쓰고

집주인분께 50만원을 선입금해드렸다.

 

전세 사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친구의 신신당부가 생각나서

집에서 전세 사기 당하지 않는 법, 등기부등본 보는 법 등을 검색해봤다.

등기부등본에는 집주인이 해당 집을 걸고 은행으로부터 융자(근저당)를 받은 내용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집주인이 해당 융자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포기하게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경매에서 나온 이익금에서 은행이 융자만큼 일단 가져가고,

남은 금액을 세입자들, 즉 전세계약을 맺은 우리들에게 전세계약을 맺은 순서대로 나눠준다.

그래서 근저당이 얼마나 있는지, 해당 집의 시세가 얼마인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예를 들어 시세가 20억인데 근저당이 1억이면

20억에서 1억을 뺀 나머지 19억을 전세계약자들에게 순서대로 나눠 줄 것이다.

 

덕분에 부동산에 대해 이런 저런 공부도 하고 앞으로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뜬금없는 문자가 날아왔다...

 

 

이제 와서...!!

 

앞서 다른 사람이 계약을 먼저 한 탓에 예약해두고 보지도 못했던 방이 매물로 다시 나왔다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계약한 사람의 신용도에 문제가 있는데 그것때문에 대출이 어려워져서 가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나)이 해당 매물을 가져가면 가계약금을 돌려주기로 집주인과 이야기가 되었었나보다.

...내용이 엄청 의심스럽고 많이 어색하긴 했지만 일단 방을 보러 갔다.

 

방은 알아본대로 꽤나 쾌적했다.

비록 북향이긴 했지만, 내가 가계약한 방처럼 창문 앞에 건물이 없이 뚫려있고,

6평인데다가 전세금도 굉장히 저렴했다.

내부 시설도 나쁘지 않고 옵션도 잘 갖춰져있었다.

주변 상권도 좋았다.

아주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있고 조금만 걸으면 마트, 시장, 주민센터 등이 있어

살기에 꽤나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방만 보면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는데 문제는 내가 이미 다른 방을 가계약했다는 것.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세 가계약 해지시 가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단순변심 사유로는 돌려받지 못한단다ㅠㅠ내 50만원

 

세상의 감사함과 따뜻함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나는 집주인분께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설명드리고, 가난한 사회초년생에게 50만원은 정말 큰 돈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선처를 부탁드렸다.

다행이 집주인분께서 절반인 25만원을 돌려주시기로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바로 그 날 저녁 다시 전세금 저렴한 그 집으로 가서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를 쓴 당일날 바로 집주인분께 보증금의 10%를 입금해드렸다.

원래는 5%이상인데 집주인이 돈이 급했는지 10%를 원하더라-_-

 

전세금도 저렴하고, 기존 가계약자가 이상한 이유를 들어 입주를 포기했다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는데,

알아보니 최우선변제권이라는 제도가 있더라.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소액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집이 경매에 팔리고 내가 우선순위에서 멀어져있다고 해도, 은행보다 나의 보증금을 먼저 챙겨주는 제도이다.

서울에서는 3,700만원까지의 보증금을 보호해준단다.

잘은 모르겠지만, 등기부등본의 근저당도 크지 않고, 내가 크게 피해보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https://www.easylaw.go.kr/CSP/OnhunqueansInfoRetrieve.laf?onhunqnaAstSeq=84&onhunqueSeq=2466

 

몇 달간 모은 월급으로는 전세금을 모두 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청년전용 버팀목 대출을 받기로 한다.

전세금의 80%까지만 지원해주기 때문에 나머지 20%는 내가 직접 지불해야 한다.

청년버팀목은 기금e든든 이라는 사이트에서 먼저 신청하여 심사를 받는다.

심사가 다 끝나면 대출받을 은행에 가서 또 신청하여 심사를 받는다.

은행 심사도 다 끝나면 돈이 들어올 것이다.

심사부터 돈이 들어올 때 까지 기간은 대략 3주정도 잡는다고 하기에 나는 입주 날짜를 넉넉하게 한 달 뒤로 정했다.

그 사이에 월급을 한 번 더 받으면 버팀목 빚을 조금이나마 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기금e든든에 접근을 못 하고 있다.

 

https://enhuf.molit.go.kr/

 

하필 내가 대출이 필요한 시점에 서비스 후속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ㅠㅠ

부디 얼른 끝나서 입주 전에 문제없이 계약 잔금 모두 지불할 수 있기를.

 

전세집을 구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확정일자를 받는 일이다.

확정일자는 전세 계약서를 쓰고 난 이후에 바로 신청이 가능하다.

확정일자를 받아놔야 대항력이 생겨서 보증금 돌려받는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다.

확정일자는 직접 등기소에 가서 신청해도 되고, 온라인 등기소에서 신청할수 도 있다.

실제 계약서를 사진찍어서 올려야하고 500원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나는 계약한 다음날 바로 온라인으로 확정일자를 신청하여 받았다.

 

전입신고는 입주 한 후부터 2주 이내에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할 수 있단다.

한 달 후 전입신고하는 내용에 대해 포스팅하겠다.

 

이사 전 비어있는 원룸에 아버지랑 같이 가서 집 안의 모든 가구(싱크대, 책상, 서랍장 등), 창문, 화장실 등 모든 곳을

동영상으로 미리 찍어두었다.

"입주하기 전에는 이랬다"를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그러질 않길 바라야겠지만) 집주인이 악한 사람이라면 2년 후 별것도 아닌 것에 딴지걸어서

전세보증금을 덜 줄 수 있기 때문에.

 

청년 전용 버팀목을 받으려면 기금e든든 심사를 통과 한 후, 은행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출해야했다.

- 임대차계약서 원본 및 보증금의 5% 이상을 냈다는 영수증 : 부동산에서 챙겨줌

-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 이건 1577-1000 에 전화해서 은행에 바로 팩스를 넣어달라고 하면 된다.

- 실제 직인이 찍힌 회사 재직증명서와 갑근세원천징수확인서 : 회사에 가서 받아야 함. 나는 pdf 파일로 받았는데 은행에서 원본을 가져오란다. pdf 에도 직인은 찍혀있는데 실제 직인이랑 프린트한 직인이랑 뭐가 다른건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 했다.

- 주민등록등본과 초본 : 처음엔 등본 가져오라그랬는데, 나중에 '나'를 기준으로 하는 초본을 다시 들고오라고 했음

- 가족관계증명서

- 확정일자 확인서? : 인터넷 등기소에서 받을 수 있음

중요한 것은 위에 것들 모두 실제로 프린트를 해서 가져가야 한다는 것...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프린트물을 들고가야하나 싶었다.

물론 종이에만 있는 효력이 존재하는 것은 들었지만, 일반인들이 집집마다 프린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프린트하려면 고생 꽤나 해야 함

확정일자 확인받은 것을 인터넷 등기소에서 받았는데, 속터지는 줄 알았다 진짜 욕이 저절로 나옴

인터넷 등기소 인터넷 익스프로러에서 뭘 지ㄹ지ㄹ 깔으라고 함 설치하고 확정일자 발급하려고 하면 프린트가 연결이 안 되어있어서 *나 친절하게 뒤로 보내줌 ㅅㅂ 열람하려고하면 돈을 700 내야하는데 신용카드 계산이 죽어도 안 됨 심지어 익스플로러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신용카드 결제 후에 리다이렉트를 안 해서 결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질 않음. ㅅㅂ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서 사이트 개판임. 휴대폰인증도 안 됨 왜냐면 나는 가난한 알뜰폰유저니까 알뜰폰은 쓸 수 없음(제한된 사용). 다른 사람 명의 핸드폰도 아니고 꼭 내 핸드폰이어야 한대 ㅅㅂㅅㅂㅅㅂ 욕이 진짜 방언터지듯이 나옴. 전자캐쉬라는 서비스가 있어서 이거라도 이용하자 했음. 700원만 넣고 처리하려고 했는데 전자캐쉬에 회원가입해야하고 최소 금액이 5천원이야 미친 그래 충전했다 치고 결국엔 돈을 내고 다운 받음(드디어) 전자캐쉬 4300원 아까우니까 나머지 환불하려고 했더니 미친 팩스를 보내서 환불을 마무리하래 ㅅㅂ 우리나라 온라인 정부때문에 암에 걸렸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은행에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심사가 진행된다.

심사 후 돈은 내 통장이 아니라 집주인 통장으로 바로 들어가게 됨.

궁금한게 많았던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Q : 2년 계약이 끝난 후 다른 집으로 옮길 때, 버팀목을 유지하고 또 보증금 증액도 가능한가?

A : 가능하다.

 

Q : 집주인으로부터 돌려받는 보증금은 은행에 들어가는가?

A : 은행이 아닌 임차인(나) 통장으로 들어온다.

 

Q : 전세보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가입하는가?

A : 입주 후에 진행하면 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해주심)

 

Q : 입주후에 해야 할 일은?

A : 전입신고를 하고 임차인(나)이 기준이 되는 등본을 떼서 지금 버팀목을 받고 있는 은행에 제출하면 된다.

 

 

순탄치는 않았지만 여튼 버팀목을 신청하고, 보증금의 20% 를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값 싼 전세 원룸도 구했고,

내 방에 있는 물건들도 챙기고, 처음 생활할 때 어떤 물건들이 필요한지도 검색해보며 리스트를 준비하고 채워나갔다.

앞으로 혼자 살면 닥칠 일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고, 게으름을 피우면 날 잡아줄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원룸에서의 게으름은 죽음이다' 라는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였다.

독립 할 준비가 끝났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서울에 전세집을 구하게 되었다.

부모님 경제적 도움 없이 나 혼자 힘으로 독립하였다.

ㅊㅋㅊㅋ

 

 

단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독립하는 이유" 가 없다는 것.

나는 독립하고 싶지만, 합리적인 이유는 아직까지 찾질 못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젠 소득이 있으니까? 부모님께 손벌리기 싫어서? 혼자사는 로망 때문에?

이런 이유들은 내 기준으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이 장농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이런 심리적인 어떤 것의 반영이라고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음)

혹시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독립을 하려는 것일까?

자취를 하는 사람들이 꼽는 자취의 장점 중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자유"다.

나만의 공간을 찾는다는 느낌과 자유를 갈망하는 느낌, 모두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독립 후 어느 정도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마음에 여유를 좀 갖게 되었을 때,

다음 물음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왜 독립을 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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